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뻘글이라고 쓰지만 몹시 진지해

나는 머리 말릴 때 한발로 말린다.

하루 중 서있어야 하는 시간의 거의 100%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다.

그리고 별다른 운동도 안한다.

그래서 다리가 퇴화할까봐 머리 말리는 8분~12분만이라도 최대한 한 발로 지지한 채로 서있으려 노력한다.

시간이나 방법은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의 심리적 위안이 있다. 

 

그러다 정말 균형을 못 잡을 것 같을 때는 머리 말리는 것을 멈추고 균형 잡는 것을 먼저 보정한 후에 머리 말리기를 재개한다.

균형을 잡으려 머리에서 때어낸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뜨슨 바람이 허공이나 벽면의 물기를 말리는 동안 나는 내 공중의 다리와 전투를 한다. 드라이기 소리는 굉장히 위협적이라서(원빈의 아저씨를 본 사람이라면 그 공포를 잘 알 것이다..) 10초 정도만 지속되어도 내 두피가 다 뜨거운 느낌이 든다.

그때만큼은 내 몸의 내 다리지만, 내가 나은 말 안듣는 자식(타인)에게 타박하듯이 대하기도 한다.

그렇게 다시 균형을 잡으면 바로 당근을 준다.

역시 내 다리~ 내 코어~

 

이렇듯 한발로 머리 말리기는 굉장히 전투적으로 임해야 하며, 한 눈팔면 머리 말리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정말 집중해야한다. 긴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머리 말리는 시간이 늘어난다? 아무리 말렸는데도 속은 여전히 축축하다? 그것만큼 절망적인 순간은 없단 말이다(얼른 다 말리고 잘 마른 머리에 에센스 발라준 다음 에센스 묻은 손 비누에 닦고 핸드크림 발라서 건조해지지 않게 케어하고 쉬어야하는데 말이야).

 

그리고 한번은 전투적으로 임하다 쥐날뻔한적도 있는데, 쥐 나는 건 무서워서 바로 발 내리고 평온하게 머리 말리고 나왔다. 그렇게 긴장하게 되면 잘 될도 잘 안된다. 

 

이렇게 머리 말리는 시간에라도 한발에 균형을 집중하면 퇴화화던 감각도 살아나고, 눈에 보이는 변화나 신체적 변화는 없지만(그래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?) 건강해지는 플라시보 효과가 생겨서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든 시작하는 시간이든 조금 더 파이팅할 수 있다.